보수와 진보의 갈등

부활하는 이념의 갈등

공산주의와 진보주의

레이몽 아롱 과 사르트르

입력시간 : 2019-01-21 16:10:32 , 최종수정 : 2019-01-24 12:20:05, 김태봉 기자

부활하는 이념의 갈등

 

공산주의와 진보주의

 

레이몽 아롱의 명언(名言)을 다시 떠올리며...

 

소련공산독재를 옹호하고,

북한의 남한침략을 적극 변호했던 쟝 폴 사르트르 등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위선적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프랑스의 정치사회학자

 

Raymond Aron(1905~83)은 이렇게 말했다.

"정직(正直)하면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좌파(左派)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라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구를 남겼다.

 

 

앙리 레비는 완전한 긍정도 아닌 걸어다니는 이성으로 아롱을 표현했다.

 

아롱의 저서 <The committed observer(참여하는 관찰자)>

우리말 번역<참여자와 관찰자>

좌파 작자의 질문자와 우파인 저자의 대담형식을 책으로 엮음.

 

사르트르와 레이몽 아롱

1905년생.프랑스 엘리트 코스인 고등사범 동기동창.

레이몽 아롱이 우익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반면 사르트르는 좌익을 대표 30여년간 프랑스 지식 사회를 지배.

그러나 당시 사회는 전후 30여년간 프랑스 내각이 수시로 바뀌던 불안한 제4공화국과 드골의 강력한 지배체제와 부르쥬아 우익 세력이 권력을 지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 지식층의 헤게모니는 마르크시즘 진영이 잡고있었다.

레이몽 아롱은 전후 프랑스가 상당한 정도의 근대화를 이루었고,생활수준이 신장되었으며,사회적 불평등은 축소되었고,교육제도도 민주화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과연 좌익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대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 시각을 갖고있었다.

또한 마르크시즘이 유행처럼 번지며 이념의 기본 인식도구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하였다.

 

일반 군중과 지식인 사회에서의 영향력에 있어서,

사르트르는 소설,희곡으로 두루 성공한 작가로,군중데모,항의시위,공개장서명등에 나타났던 극좌파 투사로 지식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은 반면 아롱은 우익신문인 피가로지 논설위원,교수, 언론인으로 온건하고,상대주의적 논조를 유지 당시 프랑스 지식사회에서 소외되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반공주의자는 개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비앙쿠르(르노 자동차 공장이 있던 파리 교외)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의식을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소련의 수용소 현실에 대해 침묵했다.

685월 혁명때는 비앙쿠르로 달려가 공장 노동자들을 앞에놓고 선동연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의 정서상 추악한 보수반동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그 누구도 자신이 우익임을 표방하지 못했다. 까뮈나 메를로-퐁티와 같이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자나 반공주의자의 선택을 원치않았다.

 

그런데 1975년을 전후해서 5월 혁명 때 젊은 학생이던 세대들이 갑자기 마르크시즘의 한계와 소련의 죄악을 깨닫고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 소련체계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레이몽 아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르크시즘이 진보의 사상을 독점한데 대해 반기를 들었고 우익과 좌익의 참모습이 무엇인가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레이몽 아롱이 옳았으며, 사르트르가 틀렸다. 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유행의 경박성에 대한 교훈이라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사회가 마르크시즘이 유행처럼 번지던 당시 프랑스의 모습과 흡사하게 변해가고 있다.

이념이란 결코 신성하거나 항구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가변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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