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삶의 향기] 뿌리와 날개

입력시간 : 2019-07-12 09:42:46 , 최종수정 : 2019-07-13 09:45:20, 편집부 기자

 




시몬, 사랑하는 아들 시몬,

 

만물이 성장하는 한 여름이다. 더위가 한풀 꺾긴 저녁 무렵, 네 방을 정리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카드를 집는다. 일 년 동안 무심히 세워 두었던 네 대학 졸업 카드. 또박또박 정성 들여 쓴 네 낯익은 글씨가 눈에 가득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제게 뿌리를 내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날개를 달고 날 때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뿌리와 날개.

 

수십 , 아빠의 몸과 마음이 푸르던 시절, 이 낯선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첫 직장으로 옮겨간 와이오밍에서 한파가 몰아친 어느 겨울 밤, 갓 돌 지난 너를 안고 가족이 함께 길을 떠났다가 조난당했던 . 인적 없는 밤의 광야에서 얼어오는 몸을 감싸 안고 우리가 함께 드렸던 간절한 기도를 기억하니? 아빠는 지금도 난 너의 무구한 염원이 우리를 살렸다고 믿고 있다.

 

그 후, 5년간 한국 문화와 단절된 오지에서 생경한 미국을 배우며 인내와 감사의 삶을 뿌리내리려 노력하였다. 한반도보다 너른 땅을 하루 종일 자동차로 달리는 출장을 갈 때마다, 나는 광활한 대지의 끝으로 나아가 떼 지어 뛰노는 야생마들을 만나곤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강인한 모하멧 말()들의 전설을 들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종마를 찾아내기로 작정한 모하멧. 그는 이 세상을 두루 다니며 백 마리의 말들을 찾아 가두었다. 먹이는 주어도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우리 아래쪽엔 아름다운 시내가 흘렀고, 물 냄새는 바람에 실려 우리에까지 올라왔다. 며칠이 흘렀다. 말들이 목이 말라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모하멧은 갑자기 말 우리의 문을 열었다. 말들은 노도처럼 시냇물을 향해 내달았다. 말들이 거의 시냇가에 도착했을 때, 모하멧은 뿔피리를 입에 대고 불었다. 그러자 다투어 달리던 백 마리의 말 가운데 오직 4마리 말만 멈춰 섰다. 발굽을 땅에 딛고 주인의 명령을 기다렸다. 하멧은 말했다. "바로 저 4마리로 이 세상 제일 가는 종자를 만들리라." 이들은 가장 영리하고, 힘세고, 아름다운 아라비안 종, 그리고 나중 사라브레드 종의 조상이 되었다.

 

시몬, 선발된 4마리의 말들이 다른 말들과 달랐던 점이 무엇일까? 엇비슷한 육체적 조건을 지녔을 대부분 말들과 다른 점. 그것은 자기 욕구와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 극기력과 항상 깨어있는 정신력, 그리고 미세한 주인의 음성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인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 이민의 삶이 미 주류사회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우리가 타민족으로부터 존경받는 사회의 구성원으로까지 성장하는 데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 중심, 내 동포 중심의 좁은 테두리를 뛰어넘는 정신적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하리라. 생각과 안목이 커져야 하리라. 그 위에 남다른 정직함과 뼈를 깎는 극기력으로 이웃에 덕을 끼치는 희생적인 노력이 꼭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나부터, 오늘부터, 가까운 데서부터 실천해야 하리라.

 

시몬, 뿌리 깊 나무는 나뿐만 아니라 주위를 정화시킴을 잘 알고 있지. 독초가 우거져 오염된 호수, 독초의 뿌리에서 나오는 독성으로 물고기도 살지 못하게 된 호수. 그 호숫가에 버드나무를 옮겨 심으면 뿌리를 깊고 넓게 내려 주위의 독초를 제거한다. 버드나무가 더욱 촘촘히 자라면, 결국 호수도 살린다. 내 주위의 환경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한국 이민의 뿌리가 이런 옮겨 심은 버드나무 뿌리가 돼야 하지 않겠니?

 

사랑하는 아들 시몬.

 

네 말대로 이젠 네가 성장하여 날개를 달 때가 되었다. 부모의 둥지를 떠나 훨훨 네 힘으로 창공을 박차고 올라갈 때다. 날개는 자유의 상징이다. 동시에 도약의 표징이다. 생각과 안목을 더욱 크고, 넓게 기를 때다. 타민족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한국인의 후예로 자라날 때다. 여기에 중요한 것 하나 덧붙이면 영적 분별력을 기르라는 것이다.

 

어느 왕이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그림을 구하고자 하였다. 평화스러운 시골 정경을 그린 그림도 있었고, 잔잔한 바다 풍경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그가 택한 그림은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암벽 한쪽 틈새에 독수리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그림이었다.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폭포수에 휩싸여 천길 만길 아래로 떨어지고 말 것 같은 둥지인데도, 알을 품고 있는 독수리의 눈에서는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그림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왕은 말했다. "이 세상에 평안한 환경이란 있을 수 없소, 그러므로 진정한 평안을 얻는 길은 이 독수리처럼 불안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평안을 소유하는 것일게요."

 

시몬아, 험한 세상에 요동치 않는 평안을 소유하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세하게 들리는 조물주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리라. 이 영적 깨달음을 얻는 때가 진정으로 날개를 다는 날일지도 모른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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