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전화와 김구

한 통의 전화가 역사를 바꾸다

명성시해 낭인을 죽인 김구

김구를 살린 고종의 전화 한통화

입력시간 : 2019-12-14 15:53:05 , 최종수정 : 2019-12-19 09:16:59, 김태봉 기자


역사를 바꾼 한 통의전화

 

1896826일 인천감옥안에 울려퍼진 전화벨 소리, 이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한 사람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1895820일 새벽

경복궁 안 옥호루를 급습한 일본 낭인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처참하게 시해당한 명성황후 을미사변 발발


을미사변의 참극이 있은 지 얼마 후..

치하포 나루터 주막에서 밥을 벅고있던 조선 청년

이때, 청년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

단발을 하고 한복을 입은 채 주막으로 들어서는 일본 남자

당시 일본남자가 나타난 치하포 나루터는 일본인이 자기들의 본래 행색대로 통행하는 곳

그렇다면 왜?

저 자는 굳이 조선 사람으로 위장한 것일까?

청년의 의문이 가시지 않울 무렵 일본남자의 두루마기 밑으로 보인 칼집

혹시 저 자가 우리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는 아닐까?”

 

혹시 경성에서 일어난 분란 때문에 도망하여 당분간 숨으려는 건 아닐까?“

만약 아니라해도 칼을 차고 숨어 다니는 왜인이 우리 민족의 독버섯인 것은 명백한 사실 아닌가?“

조선인으로서 국가의 치욕을 씻어야 한다.“

그렇다면....죽여야 한다.“

-당시 청년의 기록 중-

 


자문자답 끝에 죽을 작정하고 일본남자에게 접근한 청년.

당신, 그 칼은 대체 무엇이오!

대체 왜 칼을 숨기고 조선사람으로 위장한 것이오!

청년의 말에 칼을 빼어든 일본 남자

청년과 일본 남자의 격투.

결국 일본 남자를 살해한 청년!

 

일본 남자의 정체는 일본장교 쓰치다

이 일본남자의 정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

 

그 후 인천감옥에 투옥된 청년 그리고 3개월 후 (1896826)

옥에 갇힌 청년은 사형집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각 인천 감옥 안에 울려 퍼진

전화 벨 소리

당장 조선 청년의 처형을 멈추어라!

전화를 건 이는 조선의 임금인 고종

그랬다. 청년이 사형 집행장에 나온 그 시각!

 

조선의 국모를 시해했다고 생각한 일본인을 살해한 죄로 한 청년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하옵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보고받은 고종!

그는 평소 마음을 사로잡았던 서양 문물인 전화가

 

3일전, 궁중과 인천 간에 개통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서 최초의 장거리 전화를 이용해

직접 청년의 처형을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날 목숨을 구한 조선 청년의 이름은 김창수

바로 백범 김구였다.”그때 경성부 안에는 이미 전화가 가설된 지 오래였으나, 경성외의 장거리 전화가 설치된 것은 인천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만에 하나 그때까지 전화 준공이 못 되었다면,바로 사형이 집행되었을 거라고들 하였다.“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

 

이 내용은 정부의 공식문건으로는 기록되어 있지않으나 김구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통해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기사참조:e역사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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