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속의 절세 가인

경국지색 4대 미인

중국 역사속의 인물 미인 4인방

입력시간 : 2019-12-16 09:11:26 , 최종수정 : 2019-12-20 09:10:19, 김태봉 기자

재미있는 역사속 미인

 

경국지색(傾國之色)

 

중국의 4대 미인

 

중국 역사속의 4대 미인을 꼽는데는 이설이 있으나 대개 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를 꼽는다. 일견에는 서시,왕소군,우희,양귀비를 꼽기도 한다. 차이가 초선과 우희일 것이다. 중국 역사속의 대표적 미인이기 때문에 구태여 누구냐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시:별명이 침어(侵魚)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려 붙여진 별명이다. 춘추시대 말기 월 나라 여인으로 당시 월 나라의 왕 구천은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패하게 된다.구천은 부차의 하인 노릇을 하며 살다 복수의 칼을 갈며 겨우 월나라로 돌아오게된다.오나라를 멸망시키고자 참모 범려의 전략으로 여색을 밝히는 부차에게 서시를 보낸다. 서시에게 빠진 부차는 나라를 돌보지 않았고 월나라를 끝내려는 오자서를 죽이면서까지 국정을 소홀히 한탓에 월나라에게 패망하게된다.오나라 멸망후 부차에대한 죄책감으로 서시는 강에 빠져 자살한다.

 



 

왕소군:별명이 낙안(落雁). 고향을 떠나 흉노 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은 비통한 마음으로 비파를 연주했고 그 모습을 본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멈추고 바라보다 떨어졌다해서 붙은 별명.중국 전한 원제의 후궁으로 절세의 미모를 갖고있었다.그러나 초상화를 그리는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않아 추하게 그려진 왕소군은 끝내 황제의 사랑을 받지못하고,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시집보내졌다. 후에 왕소군이 절세의 미모를 지닌 것을 안 원제는 초상화를 그린 화공을 처형하게된다.흉노와의 화친 정책 때문에 희생된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문학에 많은 소재를 제공한다.

 

초선: 별명은 폐월(閉月). 그녀의 미모에 달이 부끄러워 구름사이로 숨었다 하며 붙여진 별명이다.초선은 왕윤의 가기였다. 그녀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고 한다.그때 한나라 황실은 포악한 동탁으로 인해 위태로워지고 있었다.이에 왕윤은 초선을 이용하여 미인계를 쓰기로 작정하고 초선 또한 이런 왕윤을 돕기위해 계획에 동의한다.여포에게 처음 소개를 하자 여포는 초선에 흠뻑 빠졌으나 왕윤은 동탁에게 초선을 보냈고 초선은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질하여 둘 사이를 갈라지게만들었다.결국 여포는 동탁을 죽이고 초선과 떠났지만 그 후 초선에 관한 여러 가지 설만 난무할 뿐 정설은 없다.

가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일에 종사하던 기생.

 

 

양귀비: 별명은 수화(羞花).양귀비가 궁중에 들어갔을 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화원에서 꽃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면서 꽃을 만지니 꽃이 부끄러워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비로 절세미인에 총명하여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아귀비로 책봉되었다.현종은 그녀에게 빠져 나랏일을 등한시하고 또한 양귀비의 가족들을 정부의 고위직에 앉힌다.정사 돌봄이 없어 나라는 혼란해지고 그 틈을 타 반란이 일어나 도주하던 중양귀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호위 군사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우희(虞姬): 패왕별희(霸王別姬)

우희는 초()나라 패의 여성이며, 우미인(虞美人)이라고도 불린다. 그녀는 초한지(楚漢志)의 등장인물인 항우(項羽)의 연인이다. 우희에 대한 역사기록은 매우 적어 그녀의 출생지,민족,사망등에 관한 기록이 없다. 다만,역사학자 사마천이 지은-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라는 이름의 미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고, 이로인해 두 가지 설이 나왔다.

첫째, “가 미인의 이름이라는 것이고 둘째, “사원에 나온 내용으로 우가 미인의 이라는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우희의 용모가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재능과 기예가 뛰어나 춤추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한다.

 

우미인이라는 칭호를 얻게된 연유이기도하다.일찍 사면초가의 곤경에 처한 항우의 앞을 지켰으며, 후대의 사람들은 항우가 지은 垓下歌)를 근거로 우희가 자살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이로부터 패왕별희의 설화가 전해지게되었다. 해하가는 항우가 지은 노래로 가이샤(垓下)에서 한()나라 고조(劉邦)에게 포위되었을 때 형세가 이미 기울어져 앞날이 다한 것을 슬퍼하며 지은 노래다. 이와 관련 설화가 있는데, 항우의 숙부 항량이 사람을 죽인 후, 항우를 데리고 오중(吳中,지금의 장쑤성 쑤저우)으로 피신을 한다. 당시 우희는 회계군(會稽郡,지금의 저장성 사오싱현)에 있었는데 항우를 연모(戀慕)하여 그에게 시집을 갔고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초한전쟁 막바지에 항우가 패배하고 전세가 기울자 항우가 술자리를 베풀어 항우가 이런 상황을 로 읊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만하건만(力拔山氣蓋世) 시운(時運)이 불리하여 추() 또한 나아가지 않는구나. ()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좋을까?" ()는 항우의 애마 이름이었다.

 

그 가사가 너무 슬프고 헤어지기에는 정이 너무 깊었고 마음이 아픈 정서가 담겨있는 노래였다. 이것이 바로 해하가. 우희가 劍舞를 추면서 한나라 군사들이 이미 땅을 차지하여 사방에 초나라 노랫소리가 가득하고, 대왕의 義氣가 다했으니 친첩인들 어찌 편히 살겠습니까?“라는 노래로 이렇게 답했다고한다.

 

이를 복해하가(复垓下歌), 혹은 화해하가(和垓下歌)라고 한다. 노래를 마친 후 우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항우가 사사로운 정을 끊고 전쟁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고하여 끝까지 항우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사기에는 우희 죽음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렇듯 미인들은 천투가인이란 말처럼 하늘도 질투한다는 말이있지만, 역사 속에서의 운명은 불행하게 끝이 나고 이를 두고 미인박명, 가인박명이란 사자성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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